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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드는 것은 몰라도 나는 것은 안다고 했던 것처럼, 일주일간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길원옥 할머니와 정대협 윤미향 사무총장, 김동희 국장과 한국 노총임원분들이 돌아가시고 난 뒤의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할머니는 2005년 6월, 93차 ILO 총회에 이 문제가 주요 안건으로 상정되도록 촉구하기 위한 증언 집회를 하러 오셨다. 길할머니는 문자 그대로 일제 식민지 침략과 분단 상황의 이중적 희생자였다. 이북 분이시기에 할머니의 억양과 모습을 대하면서 역시 이북이 고향이셨던 필자의 할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할머니는 돌아가실 무렵 정신이 희미해 지면서 북에 두고 온 아들의 이름을 더 간절히 부르시곤 하셨다. 길 할머니가 이번 증언 집회를 하시고는 밤에 잠을 잘 못 주무시면서 오빠를 자꾸 불렀다고 한다. 트라우마의 재현 후에 어릴 때 헤어진 오빠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시는 때문이었을 것이다. 길할머니는 78세의 고령임에도 차분한 어조로 각 집회 장소에서 하실 말씀을 아주 잘 전달하셨다.
정대협 윤 사무총장이 내게 집회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던 지난 3월의 시점은 유럽에서 어떠한 행사를 조직하기에는 이미 무척 늦은 시점이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6개월에서 1년 전에 계획되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친일의 성향이 강한 유럽의 풍토에서 일본에 대한 비평적 내용을 담는 보도나 행사를 반길리 없다는 것을 물론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즈음 연일 2차 대전 60주년을 맞으면서 죄책 고백에 대한 진지한 프로그램이 독일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도 독일과 일본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어떠한 형태로라도 이번 행사에 도움을 주어야 된다는 생각을 굳혔다.
결국 내가 몸담고 있는 미션 21의 전적인 후원으로 베른대학과 스위스 사회 포럼의 맥락하에서 프리부르 대학에서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고, 스위스 개혁교회 총회를 방문하여 동북아시아 전문위원들과 간담회를 할 수 있었다. 작은 규모의 행사이기는 하지만, 스위스의 인구수에 비례하여 볼때 참석자가 결코 작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효과적으로 이 내용을 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환이 너무나 진하게 지금 나에게 남아있다.
이번 증언 집회를 옆에서 돕고, 함께 참석하여 진행하며, 지켜 보면서, 이런 모든 것을 사전에 더욱 철저히 준비할 수 없었던 우리나라 NGO의 현실이 참 안타까왔다. 더욱이 이런 일을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있는 국제적 경쟁력이 너무나 약한 우리나라의 현실이 너무 슬프기까지 하였다. 또한 적은 힘이나마 서로 보태서 대의를 위하여 단합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더욱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한국 교회가 숫적인 강세를 보이지만, 그래도 이러한 사회문제를 외면하는 것에 대한 착잡함은 물론 더하였다.
할머니에게 스위스 알프스의 풍광이 별 큰 도움이나 위안이 되지는 못겠지만 그래도 자그마한 휴식의 시간도 제공해 드리지 못하고 급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시게 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나의 허전함을 더하게 한다. 부디 희생자 할머니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시고, 살아 계신 동안에 일본의 변화된 태도가 드러나길 간절히 희망한다. 무엇보다도 오랜동안의 투쟁가운데 너무 지쳐 있는 우리의 할머니들과 정대협 식구들이 실망하지 않고, 다시한번 분발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사진: 제네바 UN 건물, 베른대학과 프리부르 대학에서의 행사 장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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